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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알고싶다(1/3 행복하지 못한 자) 

    나의 고백이다. 오십대중반 재미교포 정집사다. 교회다닌지 사십년이 되어간다.  나는 마땅히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시제다. 현재시제의 나는 행복하다. 두 시제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풀어본다.  변화는 선한목자교회 유기성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예수믿고도 변화가 없는 것이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이라는 목사님말씀이 내게 안타까움을 넘어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그런 이상한 기적이 아니라 정상적인 변화를 보인 사례가 또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 올리는 글이다. 자신의 변화를 탐사해보고자 제목을 <그것이 알고싶다>로 정했다. 티브에서 이 프로는 종종 변죽만 울리고 끝나는데 정집사편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먼저 모든 서술이 팩트에 기초함을 밝힌다. 글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면 그건 순전히 허접한 내 글쓰기 탓이다. 독백형식이기에 경어체가 아님을 밝힌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문제는 신이 내린 복을 세는 것이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이 수학문제를 풀어본다. 내가 누리는 복을 대강 카운트해본다.

    복 중의 복은 하나님이 보내신 나의 수호천사 아내다. 권사이다. 고교시절 전도받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다. 예수믿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발이 땅에 안닿는 듯한 행복을 맛보고 살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발이 땅에 닿고 말았다며 내게 눈총을 주기도 한다. 흠결도 있다. 아내의 찬송을 처음 듣는 이는 하나같이 어느 대학 성악과 출신이냐고 묻는다. 아내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게 흠결이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회한 많은 지난 세월속에서 그나마 내 인생 최대의 치적(?)을 꼽으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현숙한 믿음의 여인을 내가 배우자로 만났다는 것이다. 아내는 학력뿐아니라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자기비하가 없다. 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아내 눈에는 어떤 인물도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저 가련한 인생일뿐이다, 영적 자존감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특수아동을 섬기는 삶을 살려고 관련학과를 지원했다가 낙방하자 대학에 대한 미련을 아예 버리고 직장다니며 작은 교회를 섬기며 살다가 나를 만났다. 흠결이라 말하는 것은 그 청아한 목소리로 남편을 위해 한 곡조 뽑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다.  

    대학 3학년 무렵 지병과 가난으로 인한 심신의 곤고함에 지쳐 하나님 나좀 살려달라며 학교 앞 조그만 교회를 찾아갔다. 한 자매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이 자매와 지금까지 한 이불을 덮고 살고 있다. 이 사람이 사주는 고기를 먹고 옷을 입으며 나의 얼굴은 어둠과 퀭함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어 갔다. 몇개월 전 아내가 30년전 해프닝 하나를 들려주었다. 꽤 많은 괜찮은 남자들이 아내에게 대시를 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중 에피소드 하나였다. 결혼전 데이트시절  약속장소에서 나를 만나려고 외대앞 전철에서 나오는데 한 신사가 자기를 계속  따라왔다. 전철안에서 부터 계속 자기를 쳐다보던 신사였다. 한눈에 봐도 고소득 전문직 일을 하는 사람같이 보였다. 자기를 붙잡고 커피한잔 하자고 하길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말하고 가던 길 가려는데 자기명함이라도 받아달라 사정하여 얼떨결에 명함을 받았다. 잠시 걸어오다 받은 명함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멍하니 서서 자기명함을 쓰레기통에 던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너무 민망하여 나와 만날 장소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살짝 본 명함상의 그 사람 직업은 변호사였다. 80년대 말의 일이니 변호사가 지금처럼 넘쳐나는 시절이 아니었다. 반면 나는 학교근처 도서실을 전전하던 궁핍에 찌든 대학생이었다. 그리 급히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릴 것 까지야 없지않냐는 제 말에 대한 아내의 답이 가히 역대급이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당신과 교제를 시작한 것이고 예수믿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되기에 그런 마음이 생기기 전에 미리 싹을 자른 행동이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 지난 시절의 행악을 마음으로 두손들고 반성했다. 

    나의 아내 복은 교계 최고다. 누가 이의를 제기해도 어쩔수없다. 아내가 만든 음식을 맛 본 사람들은 이런 맛이 어디서 나오냐며 식당내라고도 한다. 빼어난 미모에 오십에 들어서도 30대 중반의 비주얼이다. 오버임을 알지만 남들이 하는 말이다. 영적인 매력은 비교를 불허한다. 기도와 섬김의 사람이다. 십여년전 아내가 교회 유치부 교사를 할때 내가 헬퍼를 한 적이 있다. 아내는 아이들 하나 하나를 제 자식처럼 품고 가르쳤다. 선생님 말에 도무지 반응이 없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내는 그 아이의 필요를 파악하고 기도하며 세심하게 섬겼다. 그러자 병아리 눈물같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후에 거의 정상아로 변했다. 후일 그 아이 엄마가 아내를  찾아와 꼭 껴안아주는 장면을 나는 목격했다. 교회에서 섬기는 일이 많다. 벅차다 여겨 몇가지에서는 발을 빼라는 남편의 구박에 순종해야하지 않냐고 대응하면 할 말이 없다. 전화기가 항상 바쁘다. 대부분 교회일이다. 여성도들로부터 목회자에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로 상담해오는 전화도 꽤 있다. 아내는 성실히 응해준다. 그리고 이 사람의  입은 자물쇠통이다. 목회자와 의논할 것은 의논하지만 성도들의 내밀한 고민은 자기와 하나님만 알게한다. 어려운 문제 닥치면 비밀언어인 방안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아내가 리드하는 기도모임은 미약하게 시작되어 이제 우리 교회의 부흥의 통로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 가게도 운영한다. 가끔 너무 피곤하여 집안일 하다가 그 자리에 푹 주저앉아 잠에 떨어지기도한다. 그때 우리 식구는 못본 채 해야한다. 걱정되어 부산을 떨었다간 아내의  컨디션만 악화시킴을 알기에 그렇다. 그리 한두시간 놔두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움직이다. 죽으면 썩을 육신 고이 관리하다가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 육신이 닳은 상태로 하나님께 가고 싶다 말하는 아내앞에서 난 유구무언이다.  그러면서도 무뚝뚝한 남편이 뭐가 그리 좋은지 오십 넘은 나이에 곧 잘 스킨쉽을 해댄다. 나와 살며 후회한적 없냐는 내 질문에 그저 구원의 은혜가 감사하고 섬길 영혼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한다. 나로인해 금쪽같은 딸들이 생겼으니 나의 모든 지난 허물과 죄를 용서한다며 이제 제발 믿음으로 살자고 한다. 가끔 내게 경고를 날린다. 막내 대학마치면 선교나가야 하니 건강위해 당장 뱃살빼라고. 나는 이런 아내와  산다. 

    복 중의 복에 버금가는 복은 자식들이다. 딸이 셋이다. 첫째는 결혼했다.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고교시절 탁월한 실력으로 한국신문에도 실렸다.  미국와서 내 실수로 살림이 어려워져  딸은 거의 자력으로 대학을 마쳤다. 졸업후 백악관 인턴을 하는등 출중한 실력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걌다. 그러다가 그만 한 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커리어와 사랑사이에 고민하다 결국 사랑을 택하고 말았다. 한동안 상실감에 나는 큰 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결국 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사위에 대한 자랑을 하면 도에 지나칠까봐 절제한다. 둘째도 물건이다.  이 녀석은 공부도 별로고 사춘기에 심하게 부모에게 반항하기에 나는 일찌기 포기했다. 자식의 사춘기를 감당못하고 포기한 나는 불량아빠다. 그런데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하는 딸의 숨은 재능을 알아보고 이를 키워주는라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결국 딸이 세계 최고의 미대로부터 떡하니 합격장을 받아가지고 왔다. 장학금도 왕창 받아서 수만불의 학비도 해결해나가고 있다. 녀석이 객지에 나가서 고생하며 철이 든 모양이다. 얼마전 집에 와서 이런 말을 한다. 가진것이라곤 돈밖에 없는 주변 친구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예수 안믿는 그들이 불쌍하다면서 그들의 백은 돈이지만 자기 백은 기도하는 엄마라고 한다(여기서 아빠는 꼭 빠진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졸업하여 효도할테니 엄마 아빠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한다. 이런 경우에 미국인들은 <아썸(awesome)>하며 감탄한다. 내 입에서도 아썸이 나온다. 교회 유치부 교사를 하는 고2 막내는 왕재수다.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잘 먹어도 도무지 살이 안찌는 동생에게 언니가 붙인 애칭이다. 초등학생때 학생회장에 출마하여 미국애들과 겨루어 당당히 당선되었다. 선거공약대로 학교 급식개선을 이루어냈다. 어디 얼굴 내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연예인 할 의향이 없냐고 연락해오는 기획사들이 있다. 나는 이런 스타급(?) 여자들을 거느리고 산다. 다른 소소한 자랑거리는 건너뛴다. 

    문제는 이런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표정은 늘 무겁고 어두웠다. 참된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 메마른 자신을 알기에 교회가면 표정관리하느라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예수믿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그 말할수없는 끼쁨은 고사하고 왜 이리 무겁고 매가리없는 상태가 지속되었을까.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 

    재물이 문제인가?  그런 경우도 있다. 돈앞에 장사 없다는 걸 일찌기 알았기에 나는 장사되는 걸 포기했다. 돈앞에 서면  나는 어쩔수없는 속물이다.  그래도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막장까지는 아니 가려한다. 돈의 노예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자문해본다. 지금 나에게 원하는 만큼 돈이 있다면 나의 이 영적기갈이 해소되고 행복할까 질문해본다. 내 영은 아니라고 답한다. 30년 이상  전도와 새가족 섬김이 봉사를 해온 아내가 내린 결론 하나가 있다. 재물을 가진 정도에 비례하여 영적으로 느슨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 거의 예외없이 나타난다고.  물질문제에 대해서 나는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를 따른다.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마옵시라는 그의 기도에서 자신을 지키는 지혜와 정직함을 본다. 내가 지금 가난한지 부자인지에 대한 답을 얼마전 막내딸에게서 들었다. 고2 막내에게 우리가 가난하냐고 물었다. 막내는 그리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부자 친구들처럼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지지못해도 학교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다  있으니 자기는 부자도 아니지만 가난하지도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물에 관한 한 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을 본다. 나는 지금 부하지도 가난하지도 않다. 

    그러면 일인가? 그런 점도 있다. 일에서 만족을 못하는 남자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서도 행복를 누리지 못한다는 어느 상담전문가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여인의 사랑도 일에서 오는 남자의 성취감을 대체하지 못한다.내가 지금 미국에서 하는 일은 험한 일이다. 내 자신은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이 신경쓰일때가 있다.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인은 개의치않은 체면에 메여있는 모습을 부인할 수없다. 아내는 작은 꽃가게를 한다. 이 일을 좋아한 아내는 마냥 싱글벙글이다. 문제는 나다. 나는 대형트럭 운전사이다. 나는 프로다. 거대한 트럭을 좁은 공간에 논스톱으로 후진하여 주차할때면 내가 기술자라는 사실에 뿌듯해지곤 한다. 처음부터 시작한 일은 아니다. 미국근무 발령받고 나가자 큰 딸이 제발 한곳에서 공부좀 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간 너무 빈번히 근무지를 옮겨 제대로 공부를 못했음을 알기에 이에 동의하고 근무후 가족을 미국에 남겨두고 나만 귀국했다. 기러기신세를 각오했는데 아내가 계속 채근했다. 같이 사는 것이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두려워말고 사표내고 미국에 들어오라고 했다. 자기가 먹여살리겠다는 아내 말에 은혜를(?) 받아 미국에 들어왔다. 웬걸. 하는 일마다 아작이 났다. 우리 부부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사람들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악습(?)을 지닌 나는 비지니스의 링위에  오를 자격조차 없음을 나중에 알았다. 들어먹고 말아먹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코너로 몰렸다. 혼자 할 수 일을 찾다가 트러킹을 시작했다. 어렵게 라이센스를 땄다. 주5 일 빡세게 일하고 주말 이틀은 집에서 편히 쉰다. 달리는 거리만큼 수입이 생긴다. 다른 요소가 일절 없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직업이기도 하다. 일하는 미국회사에 동양계는 내가 유일하나  나는 내게 주어진 일 똑부러지게 해내고 있다. 누구에게  스트레스 줄 일도 받을 일도 없다. 스트레스에 유난히 약한 나에게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일로인한 스트레스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를 드린다. 나는 이 일을 꽤 즐기며 하고 있다.

    그렇다해도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에 비하면 내 일터의 모습은 초라하다. 한국에서 내 직장은 사람들이 최고로 알아주는 그런 회사였다. 내 실력에 합격할 거 같은 회사는 모조리 떨어지고 어려워서 아예 포기했던 기업에 합격했다. 동기들을 대표하여 사장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내가 일등으로 합격했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았기에 진실로 감사를 드렸다. 이것이 멘트성 발언이 아님을 보여주려면 자초지종에 관한 긴 서술이 필요하다. 요약한다,  바람앞의 등불같은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로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던 대학 졸업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당시 교제중이던 지금의 아내와 나는 하나님께 떼를 썼다. 이 회사에 합격시켜주면 선교사를 돕는 일을 하겠다고 나는 기도했다. 아무리 똥줄이 타도 내가 선교사가 되겠노라는 식의 뒷감당못할 기도는 할 수없었다. 나는 평소 하나님께 솔직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최고의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행복했던가? 역시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얼마간 성취감은 있었으나 곧 무너졌다. 해외근무를 하면서 선교사님들을 돕는 시늉은 했으나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하나님의 은혜는 이내 잊혀졌다. 퇴근하면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풀며 몰아부쳤다. 더 말하기 민망하다. 

    음란의 영인가? 일정부분 그런 면도 있다. 나는 군대에서 포르노에 일격을 당했다. 전방근무시절 부식차량 운전병이 후방에서 포르노테입을 구해와 내무반에서 보게되었다. 남녀칠세부동석 같은분위기에서 자란 순진한 시골뜨기인 나에게 이는 충격이었다. 포르노중에서도 하드코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 이 용어를 모르시는 분은 그냥 모른체하시라)로 분류되는 저질물이었다. 이후 잔상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나님께 대한 죄의식과 자매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는 매사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포르노 잔영이 더오를때마다 말씀에 의지하여 싸웠지만 항상 방어하는입장에 있었다. 그래도 은혜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포르노가 즐김의 대상이 아니라 피하고픈 더러움으로 다가왔다. 근래 유목사님으로부터 말씀의 은혜를 깊이 누리면서는 가끔 음란의 영이 다가오면 그저 웃고만다. 내안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에서 나온 변화의 모습이다. 나는 온 교회 곧 모든 성도를 향한 향한 마귀의 가장 강력하고도 현존하는 공격은 음란의 영이라고 단언한다. 교회 이력이나 직분을 막론하고 수많은 교인들의 속이 포르노에 썩어 문들어져가고 있음을 본다. PC수리업을 하는 어느 집사가 하는 말을 들었다. 거의 모든 교인의 가정의 컴퓨터를 열어보면 포르노물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자는 잘 모르겠으나 남자의 경우 신앙 유무에 관계없이 그 절반은 이미 포르노에 포박되어 있다는 것이 내 진단이다. 그래서 나는 유기성 목사님이 포르노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하셨을 때 진실로 공감하고 박수를 쳤다. 한국교회가 포르노에 대해 왜 이리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당장 영적 드라이브를 걸며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인들의 속은 음란의 영에 묶여 비틀거리는데 교회는 부흥을 간구하고 있다. 마치 마차를 말앞에 둔 것 듯한 부자연스러움이다. 부흥이란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 아닌가. 포르노에 당한 한이 깊어서인지 이에 대한 설이 길어지려고한다. 하지만 음란의 영 역시 내 심령을 짓누라는 주범은 아니었다. 주범에 달라붙은 종범같은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나? 나의 교회생활을 보자. 나는 40년 묵은 신자이다. 안수집사이다. 안수집사 회장도 했다. 이런저런 봉사도하고 선교팀장을 하면서 선교사님들을 지원하고 특정 나라에 선교유치원을 세우는 실무작업도 관여했다. 가끔 장로가 되어야 하지않냐고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있다. 장로가 될뻔했다. 피택직전에 내 스스로 포기했다. 이에대해서는 노트 한 권 정도의 긴 사연이  있다. 조금 언급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장로교회다. 모든 교회는 다 같은 줄 알았는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파악이 되어갔다. 알다시피 장로교는 칼빈의 5대교리 위에 서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칼빈의 교리에 문제가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평신도인 내가 보아도 성경은 구원을 잃을 가능성에 대해 수십차레 언급한다. 성경중에서 어느 부분을 더 중시하여 보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그런 교리를 내세울수는 있겠지만 내가 직간접으로 경험한 성도들의 삶의 현장을 보면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구원에 관한 교리는 한 치의 오류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교시절 같이 교회생활하던 친구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보았다. 조폭이 되어 되어 조폭의 칼에 죽은 이도 있고, 자살한 이도 있고 상당수는 지금 교회와 담을 쌓고 산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멀쩡한 집사도 있고 스스로를 죽음에 던진 장로들도 본다. 깊은 은혜를 체험한 후 나는 뼈속깊이 기독교인이라는 고백을 한 이가 무신론자로 변한 경우도 본다. 좀더 내밀히 일부 교인들의 삶의 현장을 보자. 19금이다. 성가대 봉사 끝나면 모텔에서 몸을 섞는 유부남 유부녀 집사 둘은 세례받은 고참 교인이다. 젊은 남자와 연애를 즐기는 유부녀 아무개는 새벽기도에 나오는 교인이다. 주일이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예배에 참가하고 봉사하는 아무개 집사는 회사 회식자리에 동석한 아가씨의 스커트밑으로 과감히 손을 넣는다. 이런 묘사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한국교회 교인들의 삶의 현장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다. 신학과 교회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는 목회자들은 이런 실상을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성도들의 귀를 만족시키는 메시지가 강단의 주류임을 본다. 나는 교인으로서 세상 한가운데서 30년 살았다. 그중 절반은 회사생활을 했다. 나는 죄를 심상히 여기고 심지어 즐기는 자들의 의식저변에 한가지 자기방어 논리가 있음을 보았다. 자기는 이미 구원받은 자라는 것, 그 어떤 경우에도 심지어 죄를 즐기는 생활을 해도 그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건대 이건 영혼없는 종교의 주문일 뿐이다. 기독교가 아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진 내가 이런 삶의 근거를 제공하는 듯한 교리를 받아들이고 선서하며 교회의 치리를 담당하는 장로가 될 수는 없었다. 장로 피택직전에 포기한 나를 설득하고자 찾아온 담임목사께 그간 겪어 온 속앓이를 토해냈다. 목사님은 이해하섰다. 얼마전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장로 임직식이 있었다. 10여년전 우리 교회에 처음와서 내가 섬기는 목장에서 신앙생활해온 두 분이 이제  장로가 되었다. 두 분을 축하하고 나오면서 설움같은 것이 밀려왔다. 장로직을 탐하지는 않지만 내 영혼 맡기고 마음대로 뛰놀수 있는 그런 교회는 어디 있냐는 하소연이 하나님을 향해 나왔다. 

    나는 그냥 교회왔다 갔다하는 그런 신자가 아니었다. 나는 꽤 진지한 신자였다. 그러나 영적으로병자였다. 욥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날 그분이 낯설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나에게 하나님은 세상없이 낯설었다. 죄사함과 거듭남의 진리가 그저 머리에서 맴돌았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도 확신도 없었다. 교회다니면서 가지게 된 그럴듯하고 막연한 느낌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는 없었다. 수십년 교회생활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기쁘다는 말, 행복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단 한번도. 나는 맘속에 없는 말을 일부러 덕담삼아 하지 못한다. 자랑이 아니다. 심각한 약점이다. 이런 나를 아내는 꿔다놓은 보리짝이라 부른다. 유기성 목사님말에 따르면 한마디로 나는 예수믿고도 찡그린 삶을 사는 그런 기적을 경험하는 사람이었다. 영적돌파를 못하고 수십년 허우적댔다. 내안에 견고한 진이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PS: 내 개인신상을 알리지 못함에 대한 소명이 필요한 거 같다. 내가 샤이한 성격 탓도 있지만 은혜받음의 통로가 내가 섬기는 교회의 묵사님이 아닌 타 교회 목사님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조심스럽다. 내가 섬기는 교회 담임목사님께 송구한 마음이 없지 않다. 나와 신학적으로 견해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는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을 존경한다.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목사님 드리고픈 생각이 든다. 또 실제 그리하기도 한다. 내가 넘어지고 탄식할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담임목사님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나는 안다. 이걸 모른다면 나는 몰염치한 자이다. 내가 현재 섬기는 교회는 장로교단에 속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요한웨슬레의 신학을 지지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교회를 옮기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 말의 함의를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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